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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죄 법 바꿔도 못 잡는다? 대한민국 반도체·핵심기술 빼돌리는 '산업 스파이'의 실체

레오파드로(Leo) 2026. 8. 27. 08:54

한중 수교 34년, '동반자'에서 '치열한 기술 전쟁'으로

1992년 8월 24일, 서울과 베이징에서 동시에 울려 퍼진 한중 수교 선언은 동아시아 경제 지형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63억 달러 수준이었던 양국 간 교역액은 수교 34년이 지난 현재 2,7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무려 43배나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양국 경제의 체질은 크게 변했습니다. 과거 한국이 중간재를 공급하고 중국이 이를 가공해 수출하던 '상호보완적 분업 구조'는 이미 깨졌습니다. 오늘날 한중 관계는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미래 핵심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하는 '경쟁적 통합시장'으로 재편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격렬한 기술 경쟁의 그늘 아래서 대한민국 산업의 뿌리를 흔드는 기술 유출 사범, 즉 산업스파이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 기술 유출의 절반 이상, '중국'으로 향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최근 매년 300명 이상이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검거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로 유출된 핵심 기술 사건을 분석해 보면,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흘러간 사례로 집계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기소된 중국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CXMT) 관련 사건입니다. 삼성전자 부장 출신 인사 등이 가담하여 국내 반도체 핵심 공정 정보를 중국 측에 넘겼고, CXMT는 이를 바탕으로 10나노급 D램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이 단 한 건의 기술 유출로 인한 국내 산업계의 경제적 피해액은 최소 수십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73년 만의 간첩죄 개정,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법적 허점

국회는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3년 만에 간첩죄 적용 대상을 기존의 '적국(북한)'에서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정 형법에 따르면 외국의 지령을 받고 간첩 행위를 한 경우 3년 이상, 최대 3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이 개정되어도 중국 등 외국을 위한 산업스파이를 실제로 간첩죄로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1. '지령·사주' 입증의 어려움: 간첩죄를 적용하려면 수사기관이 해당 스파이가 외국의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직접적인 지령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점조직 형태로 이루어지는 산업스파이 특성상 이 증거를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2. 실질 형량의 한계: 결국 현장에서는 간첩죄 대신 형량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만 적용되어 온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선진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호주의 사례)

대중국 교역 비중이 높은 호주는 일찍이 기술 유출 및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 간첩·외국간섭방지법 도입 (2018년): 외국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인지전 및 정보 수집 활동을 엄격히 규제.
  • 외국영향력투명성제도(FITS): 외국의 지령이나 자금을 받아 활동하는 주체는 사전에 의무적으로 자신의 활동을 등록하도록 규정.

호주처럼 외국 자본의 유입이나 안보 관련 기술 접근을 투명하게 공시하게 만들고,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법적 체계 구축이 시급합니다.

대한민국 기술 안보를 위한 3가지 핵심 과제

전문가들은 한중 양국 간의 호혜적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기술 유출에 대한 '레드라인(한계선)'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1. 외교적 레드라인의 명확화

한중 정상회담 등 최고위층 외교 채널이 열릴 때마다 군사·안보 및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무단 접근을 엄금하는 원칙을 명시하고, 위반 사실이 발견될 경우 공동 조사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요구해야 합니다.

2. 처벌 수위 및 입증 책임의 실질적 강화

간첩죄 성립 요건 중 '외국 지령'에 대한 해석을 현실화하거나, 산업기술보호법상 형량 하한선을 대폭 올려 기술 유출 시 얻는 이익보다 처벌로 인한 손실이 훨씬 크도록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합니다.

3. 기업 내 핵심 인력 케어 시스템 구축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되는 주요 원인은 퇴직 임직원에 대한 처우 부족입니다. 국가 전략기술 보유 인력에 대한 정년 연장, 합당한 보상 체계, 퇴직 후 관리 프로그램을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와 핵심 기술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 직결 과제입니다. 더 이상 실효성 없는 법의 사각지대에 기술 안보를 맡겨둘 수 없는 시점입니다.